조사인력 보강해 기한 준수-상벌 연계를
최근 영국의 ‘글로벌경쟁리뷰(GCR)’에 의하면 우리 독과점 사건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의 평균 처리 기간(4년 8개월)이 자료 제공 17개국 중 3번째로 길다고 한다. 대만은 9개월에 불과했다. 이 기간은 공정위의 처리 기간과 이에 불복한 행정소송 기간의 합이다. 그중 공정위 의결 사건의 평균 처리 기간은 2019년의 428일에서 2022년 598일로 계속 증가 추세였다. 다만 조사 기능이 강화된 2023년에는 기간이 502일로 다소 줄었다. 행정소송 기간은 사건마다 편차가 커 연도별로 들쑥날쑥하다. 다만 재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민사소송의 경우 판사 1인당 본안사건 수는 줄고 있으나 소송 기간은 계속 증가하고 있다(김두얼, 2023). “모든 국민은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라고 선언한 우리 헌법 제27조가 무색한 상황이다.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판정 비용이 증가하고 있다.
2009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올리버 윌리엄슨은 이렇게 의사 결정과 계약 유지에 필요한 정보 수집, 교섭, 분쟁 조정 비용을 거래비용(transaction costs)이라 정의한다. 공정거래 사건 처리 기간도 이에 포함된다. 1993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더글러스 노스는 ‘거래비용을 줄이는 제도가 번영을 이끈다’라고 갈파했다. 명확하고 공정한 제도는 경제활동의 기반이기 때문이다. 올해 노벨상을 받은 3인의 경제학자들도 국가의 경제적 성패는 제도의 질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굳이 저명 경제학자를 거론하지 않아도 공정거래 사건의 긴 처리 기간은 국가 경쟁력을 훼손한다. 공정위의 조사 기간이 길어지면 회사만이 아니라 시장도 타격을 받게 된다. 공정위는 2021년 카카오모빌리티에 대한 조사를 시작하여 얼마 전 724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으나 그사이 해당 기업의 시장점유율은 14%(2019년)에서 79%(2022년)로 뛴 상태였다. ‘잘못된 결정이 늦은 결정보다는 낫다’는 말을 한 사람은 피터 드러커만이 아니다.
절차를 준수하며 이해관계자 협의도 해야 하는 공정위의 부담도 이해가 된다. 공정거래 사건이 갈수록 복잡해지는 것도 한 요인이다. 처리 기간 단축을 위한 현실적 방안은 무엇일까? 먼저 조사 방식을 개선해야 한다. 2022년 당시 윤창현 의원의 “공정위가 먼지 털기식 조사 방식을 버리고 정해진 기간에 문제의 본질을 파고들어야 한다”는 지적은 여전히 유효하다.
기한에 대한 내부 규정도 손볼 필요가 있다. 원칙적으로 일반 사건은 6개월, 시장지배력 남용사건은 9개월, 카르텔 사건은 10개월 내에 처리해야 한다. 그러나 작년의 처리 사건 총 2084건 가운데 약 30%가 기한을 넘겼다(국민의힘 윤한홍 의원실). 그렇다고 직원을 징계하기는 어렵다. 한정된 인력으로는 기한 내 처리가 어렵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내규상 처리 기한을 현실화하고 적절한 인력을 투입한 후 기한의 준수를 상벌과 더 확실하게 연계해야 한다.
그간 거론돼 오던 정책과 조사의 분리는 작년에 이루어졌다. 앞으론 공정위의 조사 인력을 보강해야 한다. 작년의 조직 개편으로 조사 인력이 다소 늘기는 했으나 외국에 비해 1인당 심사 건수가 여전히 많다. 예컨대 공정위의 기업결합 심사 건수는 2023년 1인당 연 74건인데 미국(2020년 기준)은 10.5건, 일본은 5.2건이었다. 공무원 증원은 ‘작고 효율적인 정부’ 기조와 충돌한다. 그러나 모든 부처의 현 기능을 그대로 인정하며 전반적인 효율화를 추진하는 것은 옳지 않다. 늘릴 분야와 줄일 분야를 구분하는 것이 진정한 정부 혁신이다. 전반적으로 규제와 진흥 관련 인력은 줄이면서 우리 사회의 룰을 유지하는 기능과 인력은 강화해야 한다. 이것이 앞서 언급한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들의 가르침이다.
박진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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